담배 위에 새겨진 고유명사에 대해
(*TIME : 시간, RAISON : 이성, 이유)
2001년.
그의 손은 네모진 상자에서 둥그런 담배를 능숙하게 꺼내 그의 입에 물린다.
그의 담배에는 THIS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의 담배는 황급히 입을 빠져나오고, 그 뒤를 이어 하얀 연기가 새어나온다.
그의 입이 뿜은 하얀 연기는 허공으로 떠올라 홀연히 흩어진다.
그의 입은 말들을, 네모진 말들은 뿌연 연기에 뒤섞는다.
나의 눈은 네모진 말들을 좇는다, 하얀 연기를 따라 허공에서 길을 잃는다
나의 눈은 둥그런 말들을 내뱉는다, 道를 내뱉는다
도를 도라 하면 도가 아니니,
나의 입은 아무것도 뱉지 않은 거다 나의 입은 연기만을 삼킨 거다
나의 입은 무리에게 짧은 말을 던진다 “나 잠깐 담배 한 대만 피고 올게!”
나의 손은 네모진 상자에서 둥그런 담배를 어설프케 꺼내 나의 입에 물린다
나의 담배에는 TIME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나의 입은 천천히 천천히 연기를 나의 폐로 빨아 넣고
나의 손은 나의 담배를 다독인다 둥글고 하얗던 나의 담배가 잿빛 부스러기로 변해갈 때
나의 눈은 잿빛 부스러기를 좇는다 떨어진다 허공에 일렁이며 나의 담배는 조금씩
나의 담배가 조금씩 조금씩 작아질 때 나의 “잠깐”도 서서히 타들어간다
나는 소망한다 나의 담배가 1.5배만 키가 컸으면......
THIS 한 대
TIME 한 대
THIS 한 갑
TIME 한 갑
THIS 한 보루
TIME 한 보루
THIS 한 상자
TIME 한 상자
THIS 두 상자
CIMA 한 대
THIS 세 상자
CIMA 한 갑
.
.
.
2007년.
그의 손은 네모진 상자에서 둥그런 담배를 능숙하게 꺼내 그의 입에 물린다.
그의 담배에는 RAISON 여섯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의 입은 황급히 담배를 뱉아내고 뿌연 연기와 말을 연달아 내뱉고는 다시 황급히 담배를 황급히 연기를, 말을 뱉고 물고 내뱉고 집어물고 뒤섞는다...... 뒤섞인다.......
나의 손은 네모진 상자에서 둥그런 담배를 능숙하게 꺼내 나의 입에 물린다.
나의 담배에는 MARLBORO 여덟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나의 입은 하얀 연기에 둥그런 말을 섞고 나의 눈은 떨어지는 나의 재를 좇는다
그런가보다
그는 원래 RAISON을 피울 것이었고,
이제껏 RAISON을 피워왔고,
RAISON을 피고 있을 것이다.
하얀 연기를 뿜을 것이다.
나는 원래 TIME을 피웠고
여전히 TIME을 피고 있고,
TIME을 피고 있을 것이다.
검을 재를 떨굴 것이다.
나의 MARLBORO 한 갑을 피워낸 그의 머리가 아프다 했다,
어지럽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했다.
이런 나의 입이 당신의 귀에게 무슨 말을 하겠어요?
2007년에 씀.